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노동과 예술, 자본과 문화, 생존을 위한 투쟁, 젠더와 계급 등의 문제를 ‘가족’과 ‘사회’의 촘촘한 관계망에서 영리하게 풀어낸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반복하며 치열한 삶의 갱도를 주인공 스스로 파고들고 있다. 희망의 빛이 희미해진 탄광촌의 소년 빌리가 명멸하는 빛을 살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발레리노로 도약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무대에서 땀 흘리며 공연하는 어린 배우들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2년여 동안 발레, 탭, 힙합, 모던댄스, 아크로바틱, 필라테스, 복싱, 보컬 등을 트레이닝하고, 3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4명의 빌리가 탄생했다. 이후 최종 후보에 올랐던 에릭 테일러가 추가 오디션의 기회를 얻어 가장 늦게 팀에 합류하면서 5번째 기적의 소년이 된다. 세공하지 않은 원석이 다듬어지듯,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을 5명의 소년들. 그중 12살 동갑내기 심현서와 에릭 테일러를 만나 춤과 자유, 무대와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처음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사실 기분이 묘했어요. 맏형 두 명이 발레를 너무 잘했는데, 떨어졌다는 거예요. ‘형들이 떨어지면 도대체 누가 되는 거지?’ 생각했어요. 같이 발레를 배운 입장에서 너무 속상했고,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됐죠. 기쁨은 그 뒤부터였어요(현서).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고, 친구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에릭).


공연 전후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좀 더 어렸을 때는 이기적인 건 아니지만, 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이 연습하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 선생님들과 눈빛으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법을 배웠어요. 첫 공연 때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면 지금은 캐릭터의 감정에 더 몰입하려고 해요. 여유라기보다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체력을 안배하는 노하우나 팁이 생겼죠(웃음). 지금은 ‘함께’이고 ‘우리’라는 신뢰가 생겨서 좋아요(현서). 전보다 좀 더 강해졌어요. 선생님들에게 하루하루, 하나하나 엄청 많이 배워요. 조금 여유가 생겼고, 긴장감은 100% 없어졌어요(웃음). 생각해보면 춤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빌리랑 닮은 것 같아요(에릭).


그래도 첫 공연 때는 많이 긴장했겠어요.
사실 처음에는 전혀 실감 안 났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긴장되고, 약간 무서웠어요. 주연이 실수하면 흐름 자체가 꼬이잖아요. 조용한 무대에서 의자라도 잘못 놓으면 꽈당당탕 큰 소리가 나니까…(현서). 공연 한 번 하고, ‘나 잘했다’ 하며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되잖아요. 뒤돌아보면 부족한 게 정말 많은데…. 그래도 일단 잘 견뎌내고 해냈다는 게 뿌듯했어요(에릭).


서로의 장점을 말해준다면?
에릭은 자신감이 넘치고, 아크로바틱 동작을 늘 먼저 할 정도로 겁이 없어요. 항상 명랑하고 밝아서 신뢰가 가는 친구죠(현서). 현서도 자신감이 넘쳐요. 발레를 그 전에 해서인지 저희보다 더 유연하고, 발레 동작도 너무 예뻐요. 배울 게 많은 친구예요(에릭).


특히 기다려진다거나 힘든 장면이 있어요?
빌리 4대 신은 솔리대리티(Solidarity, 이하 솔리), 앵그리 댄스(Angry Dance, 이하 앵그리), 드림발레(Dream Ballet),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 이하 일렉)인 것 같아요. 솔리는 빌리의 성장을 가장 빠르고 자세히, 한 번에 확 보여줘서 재밌어요. 앵그리에서는 체력이 바닥나서 미칠 것 같은데, 쓰러지고 나면 ‘무슨 일 있었지?’하고 아무 것도 안보여요. 마치 제가 괴물이 된 느낌이죠(현서). 제 기준에서는 앵그리, 일렉, 드림발레, 휘날레인 것 같아요. 드림발레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솔리에서는 대부분의 배우가 함께 협동해서 춤을 추니 좋아요. 모든 배우가 빛날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죠. 앵그리는 분노를 표출하는 신이라 현서 말대로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에너지를 쏟지만, 인터미션이 있으니 괜찮아요(웃음). 저는 드림발레 플라이가 힘들어요. 와이어를 타고 올라가면 등 근육을 써야 하는데, 공연 후에 많이 아프거든요(에릭).


명장면들을 연기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넘버마다 저만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있어요. 일렉에서는 빌리스쿨에서 연습했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가사처럼 전기가 오면서 자유를 느껴요. 솔리는 제 한계를 시험해보는 장면이라 말도 안 나오게 벅차올라요. 드림발레에서는 포그까지 깔리니 꿈속에 있는 것 같고요(현서). 저희가 되게 힘들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만큼 자유를 느끼기도 해요.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동작이 붕 뜨거나 자세가 ‘찰깍’ 잘 나올 때 성취감이 들죠. 그것을 하나하나 쌓다 보면 어떤 한계까지 가고, 관객들은 모르는 저만의 성취감은 더 쌓여가요(에릭).


‘빌리’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나요?
원래 발레리노를 꿈꿨는데, 뮤지컬도 너무 재밌어요. 배우 선생님들과의 교감도 너무 좋아요(웃음). 빌리가 새로운 꿈을 꾸게 해줬어요. 박정자 선생님처럼 계속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죠. 발레는 할 수 있는 나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점프를 더 높이 해야 하니 여자보다 남자가 더 수명이 짧을 것 같아요. 그래서 발레를 그만두면 제2의 인생으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쨌든 예체능 쪽으로 꿈꾸고 있어요(현서). 원래 꿈은 과학자였다가 빌리를 하는 중간에는 레고 회사에 취직하는 거였고, 요즘에는 또 달라졌어요(웃음). 아직 딱 정한 건 아닌데, 빌리를 하면서 저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 발레리노, 백댄서 등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에릭).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싶어요?
잘 성장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희는 아직 완벽하지 않아요. 하지만 더 발전할 수 있고, 열심히 연습해서 더 좋은 공연, 완벽해지는 공연 보여드릴게요. 선우형(임선우, 뮤지컬배우·발레리노)처럼 다음 빌리들이 ‘우와’ 하는 빌리가 되고 싶어요(현서). 포기하지 않고,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싶어요. 저도 한 공연 한 공연 더 발전된 모습 보여드릴게요(에릭).

3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소년들은 ‘만들어내고’, ‘해내며’,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매 순간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무대 위 시간을 살며 빌리가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상승을 향해 끊임없이 하강하고 있다. 어제보다 성장할 오늘을 위해.        
      
글·사진/ 김신영 기자


사진: “저 새들처럼 높이 날아오르듯 짜릿한 그 느낌 불꽃 튀듯이 전기가 흘러 자유를 얻죠.” (일렉트릭시티 中)
@월간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