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력 닭장

 

 

영 손재주가 없어 집짓기 작업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했던 저는 자급농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였지만 곡식과 채소를 스스로 만들어 요리해 먹는 일이 공방생활 가운데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음식찌꺼기를 골라 닭들에게 모이를 주니 신선한 계란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고, 또 남은 음식찌꺼기는 밭에서 퇴비로 만들어 사용했더니 큰 수고 없이도 신선한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일이 서툰 저를 대신해 더 많은 일을 떠맡아야 했던 동료들에게 휴일마다 숙소에서 밥을 지어 주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고 딱히 정한 것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음식이나 물건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해만 지면 서늘해지는 열대야 걱정 없는 시골이기도 했지만 선풍기를 포함해서 별다른 냉방기구 없이도 습하고 무더운 나스의 여름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힘은, 이런 ‘동료’ 사이의 나눔 덕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별미는 일과가 끝나고 잠들기 전에 마시는 맥주입니다. 맛있는 맥주를 좋아하고 뭐든지 돈을 주고 사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나나쨩은 ‘몰트캔’으로 판매하는 맥주원액과 효모를 구입해 다른 문하생들, 이웃 주민들과 함께 맥주 만들기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맛좋은 맥주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날마다 잠깐씩 노래 한 곡을 곁들인 잡담을 나누며 즐기는 맥주의 맛은 공방생활의 백미였습니다. 물론 숙소 앞 비전력 목욕탕에서 겨울이면 쓰레기와 장작으로 데운 따뜻한 물에, 여름엔 시원한 찬물에 순서대로 몸을 담그고 나온 뒤니 맥주가 더 맛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가끔 방문객들이 선물로 전해 주신 수박을 숙소 바로 옆 냇가에 담갔다 쪼개 먹으면 굳이 후지무라 선생의 발명품인 ‘비전력 냉장고’는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했습니다.

 

비전화 카페의 벽체를 작업장에서 조립해 공사현장으로 운반하는 모습은 뜻밖에도 지난해 공방의 여름을 매우 덥게 만든 ‘원흉’이 되었습니다. 초여름에 신문과 방송에 연달아 소개가 되면서 손작업으로 소량 주문 생산하는 이 제품에 대해 2년치 주문이 한꺼번에 쇄도했기 때문입니다. 물을 많이 흡수할 수 있는 특수 필터지에 염화칼슘을 적셔 햇볕에 말리는 핵심 제조 과정은 대개 제자들 업무였기 때문에 아침 청소가 끝날 무렵 부가 업무가 되었습니다. 바깥 공기가 잘 드는 공방에서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습도를 낮추어 체감온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전력 에어컨’ 역할도 어느 정도 하게 된다는 사용자들의 좋은 평가. 그런데 장마철에는 습기를 먹은 필터를 말릴 수가 없으니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비전력 제습기를 사용해 주는 소비자들은 탈핵을 꿈꾸는 ‘착한 소비자‘이자 ‘비전력 지지자’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 염화칼슘으로 만든 비전력제습기

 

 

실은 공방작업장 구석에 기화열과 태양열 패널을 이용해 만든 ‘비전력 에어컨’ 시작품이 있긴 하지만, 2011년 이래 비전력 발명품의 개량과 발명이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언제 소개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9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나스도 저농도 방사능 오염이라는 재앙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후지무라 선생은 저농도 방사능 오염지역에서도 아이들이 큰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 수 있도록 제염과 안전대책을 만들기 위해 ‘성채’라는 작은 지역 엔피오를 만들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후지무라 선생과 공방의 부대표인 켄스케 씨는 식품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도 직접 만들어 시중 삼분의 일 정도 가격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탈핵을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핵발전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분투하며 주로 돈이 많지 않은 지역 시민단체, 생협, 농장에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고령이신데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하셔서 선생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1년 가까이 비전력 공방에서 보낸 도제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자급자족자립’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몸노동으로 자연의 ‘생산 작업’에 참여하는 자랑스러운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비와 바람과, 지렁이, 부드러운 토양, 이름 모를 벌레들, 짐승들이 함께 작은 씨앗을 보기 좋은 채소로 키워 내는 과정에 제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습니다. ‘비전력’ 도구는 기발한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전기를 사용하는 대신 우리가 몸을 움직여 좋은 도구로 일했을 때 얻는 기쁨을 얻게 하는 ‘전전화(前電化)’ 도구이기도 합니다. 전통의 지혜에 이미 많은 부분 반영이 되어 있으나 우리가 어느 사이엔가 별다른 생각 없이 약간의 수고를 핑계로 버린 것들이지요. 이를테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실은 소음이나 미세먼지 같은 더 큰 불편을 가져올 수 있는 진공청소기대신 잘 만들어진 싸리비로 바닥을 쓸 때 느끼는 기분 좋은 반동의 리듬을 느껴보는 것과 같이요. 비전력 도구를 사용하는 ‘수고’는 어느 새인가 즐거운 참여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속해 가는 안전한 삶을 위한 ‘탈핵’, 전기와 자원을 많이 사용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비전력 적정기술’의 지속 보급과 개발, 이를 위한 문화 운동은 후지무라 선생과 그 철학에 감화 받은 일본 사람들뿐 아니라 메시지에 공감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 짚으로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

 

김유익 님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다국적 컨설팅 기업, 소프트웨어 회사에 근무하면서 금융기관을 위한 프로젝트 관리자 일을 해왔다. 2012년 일본 비전력 공방에서 문하생 생활을 보냈고, 올 6월부터 서울 하자센터 작업장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