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겔은 바람이 숨 쉬는 소리의 집이다. ‘신이 완성하는 악기’ ‘천상의 악기’로 불리는 이 무한대의 공간은 기술력과 소리, 예술적 감각으로 지어진다. 국내 유일의 오르겔바우 마이스터(Orgelbau Meister)* 홍성훈(59)은 한국의 척박한 오르겔 시장에서 20년간 고군분투하며 소리길을 다져왔다. 그는 1987년 독일로 건너가 10년 만에 귀국해 ‘홍성훈 오르겔바우’를 설립했고, 이후 악기 제작에 몰두하며 바람결에 세월을 내어주었다. 그 시간의 궤적과도 같은 18개의 오르겔은 그의 말대로 매일 기적을 경험한 삶 그 자체였다. 오늘도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그를 경기도 양평에서 만나보았다. 고즈넉한 숲길에 자리한 작업장에는 또 한 대의 새로운 오르겔이 적막을 깨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오르겔’을 만든다는 것

“독일에서 이민 1.5세대들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의 본질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이는 곧 오르겔이라는 이질적인 서양악기를 한국에서 만들게 된다면 어떻게 우리 문화에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오르겔은 그렇지 않잖아요. 교회나 성당,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공연장에 가지 않고서는 보기 힘들고, 개인 소장도 어려우니까요.”

한국적인 오르겔을 만드는 것, 그는 늘 이 화두 앞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제작을 넘어 한국적인 오르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그 지향점을 둔다. 음악은 지식과는 달리 가슴으로 직접 파고드는 것이라서 무엇보다 먼저 다양한 팬을 확보해 음악의 본류로 들어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지 않고 자칫 소수만을 위한 문화로 범위가 축소된다면 대중과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이스터 과정을 수행하려고 요하네스 클라이스 오르겔바우에 입사했는데, 스승 클라이스가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당신의 문화를 만들라고.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점점 ‘당신의 문화’라는 말에 일종의 사명감이 생겼어요. ‘한국적’이라는 말은 오르겔이 한국 악기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한국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오르겔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면 좀 더 익숙하게 다가오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잖아요. 오르겔 전통과 문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무작정 서양식으로만 흡수하기보다는 우리 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죠.”

그는 한국의 1세대 오르겔 장인으로서 제작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했다. 악기의 메커니즘, 설계, 목공, 디자인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르겔 제작자로서 터를 잡고 정착해온 나날들은 소리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왔다. 주로 유럽에 의존해온 과거와는 달리 오르겔 제작의 독립성이 현저히 높아진 것이다. 현재는 30~50% 정도를 독자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오르겔 제작 문화가 워낙 생소해서 작업장에서의 일보다는 주로 외부적인 것들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단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라고. 저도 어떤 거창한 목표나 꿈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제 앞에 놓인 삶을 살아왔어요. 그간의 경험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 제 일에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되더라고요.”

오르겔은 정교한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는 예술적인 역학 장치이다. 이 예술 공학적으로 설계된 복잡한 아날로그 기계는 인간의 신체적 구조와 많이 닮아있다. 그는 오르겔을 인간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프리즘이자 부활의 악기라고 했다. 오르겔을 만드는 재료, 즉 나무는 반드시 베어져서 깎여야 하고 동물은 죽음을 통해 가죽을 남겨야 하며 철은 뜨거운 용광로에서 제련되어야 각각의 생명력을 지닌 소리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저보다 뛰어난 장인들이 너무 많아요. 서양 제작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되죠.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오르겔 제작이 가능해졌고,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에요. 남들이 하지 않아서 선구자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사실 저는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마치 데모할 때 구호를 외치며 정신없이 막 달려나갔는데, 뒤돌아보니 맨 앞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랄까요? 도망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웃음). 어쩌면 목표 없는 삶도, 너무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삶도 모두 다 힘든 것 같아요.”

오르겔이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는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 정도 걸린다. 그는 처음 설계도가 나오면 어김없이 눈앞이 깜깜해지곤 하지만, 1년이 지나 형태가 바로 잡히고 하나의 조형물로 일어서게 되면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마냥 기쁘다고 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모든 오르겔이 이러한 환희의 순간을 맞으며 세상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중 ‘산수화’로 명명된 13번째 오르겔은 그의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되었다.

“국수교회(양평)에 있는 오르겔은 13번째라는 것에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달력과 시계도 12를 기준으로 하고 있듯이 13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시작을 말하죠. 그런 맥락에서 첫 번째 악기이고, 이를 계기로 어떤 오르겔을 만들어야겠다는 철학이 생겼어요.”

한국적인 오르겔 문화를 꽃피울 첫걸음은 서양음악과 국악의 만남이다. 오르겔과 해금, 그리고 대금 합주를 비롯해 국악 앙상블과 펼친 여민락(與民樂) 무대는 이질적인 두 문화를 잇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열정과 호기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제한된 삶 속에서 일을 통해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그의 소명이자 사명감이 되었다. 앞으로 제작자로서, 또 오르겔 전도사로서 올곧이 걸어갈 그의 바람 상자에는 어떤 바람이 머물게 될까. 그 바람의 소리가, 소리의 바람이 기다려진다.

글. 사진 김신영 편집장

 *독일어로 Orgel은 파이프오르간을 Bau는 건축을 Meister는 장인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