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특별한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순간은 때때로 삶의 회전판 위에서 소비되고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희미한 듯 선명하게 작은 햇살을 띄워준다. 

대학생인 나에게도 그러한 소중한 순간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은 세상이 어둡게만 느껴질 때 그늘진 마음을 이내 밝혀 주었던 작은 빛과 같았다. 지면을 통해 그 소중한 순간을 꺼내보려고 한다.

언젠가 나는 한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적이 있다. 그 학원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 친숙하지 않은 곳이었고, 다소 낯선 동네에 위치해 있기도 했다. 얼마 후 면접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오는 길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히 맑았었는데, 때마침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하늘은 조금씩 어두운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 아침에는 하늘이 너무나도 맑고 청량했기 때문에 비가 올 만한 기미가 전혀 보이진 않았다. 예상과는 다른 날씨에 순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챙겨온 우산도 없어서 ‘그냥 잠깐 비를 맞자’고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서둘렀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날씨와 같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을 맞이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계시던 노부부가 우산 없이 빈손으로 비를 맞이하고 있던 내게 우산 하나를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나에게 우산을 쓰고 가라며 친절을 베풀어 주신 노부부. 그분들은 나머지 한 개의 우산을 함께 쓰면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셨다.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분들의 다정한 뒷모습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때 그 순간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선명한 빛깔로 존재한다. 때때로 그날의 화사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평온하고 충만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샘솟음을 느낀다.

그날의 그 순간은 내가 나의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는 잠시 잊혀버린 작지만 중요한 순간일지라도 결국에는 내게 큰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나에게 주는 커다란 울림과 단단한 힘은 나 자신을 절대 멈추지 않게 만들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오늘도 작가로서의 나아갈 길을 고민하게 된다. 여러 고민과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을 그림에 담아내고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순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이런 나의 바람이 봄바람에 실렸을까. 문득 그 어딘가에서 봄 햇살처럼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웃고 함께 걷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해사한 웃음, 따뜻하고 포근하다. 나는 이러한 동행(同行)의 순간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밝은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다시, 봄이다. 봄날의 햇살을, 봄날의 향기를 만끽하며 기억 속 그 풍경을, 마음속 그 장면을 되새겨 본다. 그날, 그 순간 노부부의 해맑은 미소처럼 내 그림도 누군가에 따듯한 미소와 온기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봄꽃이 되길 희망하며.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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