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돌아오고 지침 없이 거슬러 오르다  

문화를 드러내는, 패션 이상의 패션

프랑소와즈 위기에 Francoise Huguier

Vestige de la piscine de Chup, Cambodia, J’'avais huit ans series, 2004

프랑스의 사진작가가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2004년에 캄보디아를 찾아갔다. 그녀의 캄보디아 방문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50여 년 전, 세계2차 대전 후, 위기에는 부모님을 따라 캄보디아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직 인도차이나 지역이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위기에가 8살이던 1950년, 그녀는 베트공에 의해 오빠와 함께 납치되어 그들과 함께 8개월을 지냈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 위기에는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선생님은 자꾸 거짓말하지 말라고 꾸지람까지 하자 위기에는 그때부터 그 시절 이야기에 대해서 침묵하게 되었다.

프랑소와즈 위기에 작가가 50여 년 만에 다시 캄보디아를 찾게 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연세가 드시면서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위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는 물론 자신도 잊고 지내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그때는 위기에가 사진을 시작했던 때였다. 베트공이 어린 위기에에게 건넨 카메라가 그 시작이었다.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이후 언론사에서 유명 패션브랜드까지, 상업사진에서 저널리즘과 순수예술 사진까지 넘나드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물론 아프리카와 러시아, 그리고 일본, 인도,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넘나들다가 이번에 한국에까지 이르게 된 그녀를 서울에서 만났다.

캄보디아에서 50년 만에 자신의 흔적을 쫓아 작업한 사진을 모아 2005년 사진집 ‘J'avais huit ans(내 나이 8살이었을 때)’를 출간했다. 왜 50여년 만인가?

공포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바빴다. 사진에 열정을 다하다 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 때문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도 개인적으로도 그때를 회고하고 싶어졌다. 

같이 납치되었던 오빠도 동행했는지.

오빠는 가지 않았다. 우리가 납치되던 날 40여명이 죽었고 우리 부모의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한 채 납치되어왔다. 당시 납치되어 8개월을 보내는 동안 오빠는 내게 큰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내가 강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이었다. 

5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이 나는지.

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다. 다만, 내가 지내던 집과 놀던 수영장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번에 다시 찾아가보니 모두 버려져서 수풀이 무성한 정글같이 남아있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했다.

사진 속에 한 인형이 있던데.

나를 기억하는 마을의 한 할머니께서 내게 가져온 인형이다. 푸른 눈에 금발의 플라스틱 인형인데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내 인형이라고 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Jeune fille somono, Segou, Mali, Secretes series, 1995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1990년에 첫 번째 책 ‘Sur les traces de l'Afrique fantome’을 출간했다. 그 이전부터 그녀는 아프리카에 매료되어있었다. 옮기자면 ‘미셀 레리스의 발자취’인 이 책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아프리카 인류학 조사단으로도 참여하여 1930년대에 아프리카의 서쪽 대서양 연안부터 동쪽의 인도양 연안까지 횡단했던 미셀 레리스(Michel Leiris)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 이후로도 위기에는 지속적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촬영을 이어갔다. 그녀의 사진 속에서는 우리의 고정 이미지처럼 굳어버린 가난하고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항상 어디에서든 포트레이트와 오브제 촬영에 집중한다는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도-그녀의 패션 사진 속 모델들의 모습이 그렇듯-품위와 기품을 발견하여 보여주었다.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2000년에 불현 듯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위기에는 1991년 시베리아에서 촬영을 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결심한 그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수개월간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Kommounalki‘에서 거주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하였다. ’Kommounalki‘는 오래전 부호들의 대형 아파트였던 것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이 몰수하여 다수의 가구가 거주하는 공동거주 시설로 바꾼 아파트이다. 위기에는 여기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2007년에 사진집 'Kommounalki‘을 출간하였고 동명의 영화도 제작하여 2008년에 공개하였다.

물론 러시아에 집중한 7년간이던 어느 때도 작가는 한 곳에만 정체한 적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러시아와 남미, 다시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쉬지 않고 오고갔고 한 번 간 곳은 어김없이 돌아갔다. 묘한 것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위해 촬영하던 그녀의 사진 속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광고 사진이던 개인 작업이던 그녀의 사진에서 항상 패션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 관찰자로서의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단순한 옷과 제화 이상의 패션을 넘어서 굳이 값비싼 브랜드가 없더라도 사람이 본질적으로 갖춘 품위와 지역 문화의 특성이 드러나는 표상으로서의 패션을 담아낸 그녀의 재능에만은 쉽게 수긍하게 되었다.

Nu sur les journaux, Saint Petersburg, Russia, Kommounalki series, May 2006

Woodlands, Singapore, 2009

인사동에서 만난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그녀의 오랜 경력만큼 수많은 사진들을 훑어가다 한 사진을 특별히 꼭 집어 보여주었다. 종로 한 골목의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이었다. 촬영한 때가 1982년이었다. 30여 년 전에 서울을 방문했었던 위기에는 좁은 골목길에서 생선을 굽던 피맛골과 (많은 한국 사람들마저 잊어버린) 통행금지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왔는데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높고 번지레한 빌딩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한국을 방문하게 된 연유를 묻자 위기에는 2010년 프로젝트부터 이야기하였다. 2010년에 그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태국의 방콕에서 중산층을 촬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 십 년간 동남아시아의 변화를 직접 목격해온 위기에는 특히 중산층을 주목하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대도시의 중산층은 이 지역의 급격한 경제적 문화적 변화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동남아시아의 빠른 성장에 걱정을 보탰다. 그녀는 80년대의 동남아시아가 지금보다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훨씬 더 자유롭고 삶의 방식이 단순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아시아 중에서도 다양한 언어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민족이 다채로운 생활과 문화 양식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동남아시아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2013년에 그녀는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반둥에서 젊은 세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거의 90%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이다. “80년대만 해도 히잡을 쓴 여성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많아졌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히잡을 쓴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색상과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과거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도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던 히잡이 지금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사이에서는 K팝의 영향으로 K팝에 보아온 패션 악세사리를 더하고 칼라 렌즈를 쓰는 것도 유행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 여성들을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화와 패션을 변화를 담은 ‘Hijabistas' 시리즈는 바로 말레이시아에서의 ’K-Pop in Malaysia' 시리즈로 이어졌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2012년에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 말레이시아 학생들을 만났었는데 이들이 K팝에 빠져있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다시 말레이시아를 다시 방문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K팝 팬들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모여든 그들을 한 쇼핑몰에서 촬영했다. 각자가 보통 화장하고 준비하는데만 3~4시간이 걸렸는데 모두 즐겁게 촬영에 임해주었다.

Hidjab, Bandung, Indonesia, November 2013

K-pop, Kuala Lumpur, Malaysia, K-pop series, May 2013

80년대에서 빌어온 듯한 파스텔톤의 의상과 칼라풀한 손톱과 가발 등,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은 단지 K팝뿐만 아니라 J팝과 80년대의 문화가 뒤섞인 결과에 더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들이 스스로 K팝의 광팬이라고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에는 여기에 중요한 점 하나를 더 지적했다. “이들이 말레이시아의 전체 문화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는 없다. K팝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계이다. 이들은 이슬람교가 많은 말레이인들보다 문화에 개방적이고 패션에 예민하다.” 말레이시아의 K팝 팬들은 K팝 유행의 결과라기보다 다양한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젊은 세대가 일으킨 소용돌이 속에 K팝이 껴있는 듯 보였다.

영향력의 지분을 따지기 전에 위기에 작가가 더 주목한 사실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젊은 세대들이 서로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길로 다양화하고 있는 혼란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K팝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프랑소와즈 위기에가 한국으로 다음 방향을 정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한국에서 중산층의 젊은 세대와 연예계를 지켜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거침없이 나아가던 작가의 오랜 시간과 긴 작업의 흐름이 한국까지 이르게 된 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가 있게 되었다. 과연 한국이 아시아의 급변하는 문화의 흐름을 따라가던 프랑소와즈 위기에의 일련의 작업들의 종착역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시 새로운 물살을 타고 더 나아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그 중요한 지점의 하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다음 사진들도 이미 매우 흥미로운 것이 되었다.

글 | 이철승 PHOTODOT.LA@gmail.com

프랑소와즈 위기에

1942년 프랑스 태생의 프랑소와즈 위기에는 1976년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에서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였다. 이후 리베라시옹(Liberation) 등 다양한 매체에 사진과 영화, 정치와 르포르타주, 그리고 패션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사진가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다. 이후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1990년에 첫 번째 사진집 ‘Sur les traces de l'Afrique fantome’를 출간하고 1993년에는 월드프레스포토로부터 상을 수상하였다. 1998년에는 유럽사진미술관(Maison Europeenne de la Photographie)에서 그녀의 첫 전시 'A L’extreme'를 열었다. 그 이후로도 뮈글러(Mugler), 랑방(Lanvin), 라크로아(Lacroix) 등의 패션광고사진과 함께 개인작업도 꾸준히 병행해오고 있다.